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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무도 작은 겨우살이 나뭇가지의 일을 알지 못한다. - 미스틸테인 외전
하얀늑대3
2015-03-09 18:49:49 ㅣ 조회 1950
  북유럽신화의 종말 라그나로크는 9빛의 신 발두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신들의 세계가 무너지게 되는 라그나로크 북유럽 신화에서 말하는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 오딘과 프리그의 아들인 빛의 신 발두르는 자신이 어둠에 잡아먹히는 악몽을 꾸었다.  발두르의 악몽에 잠을 설친 어머니 프리그는 세상 모든 만물에 발두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다. 작은 겨우살이 나뭇가지 하나만 제외하고….
  프리그 여신이 세상 모든 만물에 맹세를 받은 후 신들은 신성한 곳 글라드스헤임에서 발두르가 어떠한 사물에도 다치지 않는지 그에게 던져 실험을 하였다. 그 어떠한 사물도 발두르를 해치지 못하자 신들은 그것을 매우 기뻐하였고, 그것은 이내 신들 사이의 놀이 문화가 되었다. 이 세상 어떠한 것도 발두르를 해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시샘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꾀와 속임수의 신이자 불의 신인 로키였다. 로키는 자신이 궂은일은 다 하는데 발두르가 모든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하였고, 발두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맹세를 받지 않은 겨우살이 나뭇가지의 존재를 알게 된 로키는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가져가 발두르의 동생이자 앞을 보지 못하는 회두르를 꼬드겨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발두르에게 던지게 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쏜살같이 날아간 겨우살이 나뭇가지는 발두르를 관통하였고 그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죽음을 기점으로 거인과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가 일어나 북유럽 신화는 종말을 고한다.』

 이 이야기의 책장을 넘기며 문뜩 궁금한 것이 생겼다. 발두르를 죽인 여린 작은 나뭇가지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어떠한 문건에서도 나뭇가지가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 아무도 작은 겨우살이 나뭇가지의 일을 알지 못한다. 
 여름에도 녹지 않는 추위의 산. 북유럽의 겨울은 매우 혹독했다. 모든 나무들은 모조리 푸른 잎을 잃어버리고, 눈 속에 웅크려 가냘픈 생명을 유지하기 바쁘다. 손끝을 베어내는 듯한 추위와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 속에서 나는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센 눈보라와 높은 산과 바위 그리고 아직 잎을 띄우지 못한 메마른 나무뿐이었다. 세찬 바람 때문에 언제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해 하면서도 나는 살아남기 위해 내 온 힘을 다하여 생명을 발하고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나 세차던 눈보라도 멈출 즈음 한 마리의 검은 새가 날아와 가만히 내 위에 앉았다.

“반가워요. 나는 미스틸테인이라고 해요. 살아있는 동물을 본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작은 새는 화들짝 놀라더니 자신의 밑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 반가워. 이렇게 추운 곳에도 아직 잠이 들지 않고, 깨어있는 아이가 있었네. 나는 오딘신의 전령과 같은 종족인 까마귀라고 해.”
“반가워요. 그런데 이런 곳엔 어쩐 일이신가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이럴 때가 아니지.”
까마귀는 급한 듯 자신의 날개에 쌓인 눈을 털더니 하늘로 날아가려고 하였다.

“잠깐만요. 저는 이렇게 대화해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데 잠깐만 말동무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 소원이에요.”
“음…. 그래. 뭐 갓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전령의 역할이지.”
까마귀는 펼치려던 날개를 접고 내 위에 다시 가만히 앉았다.

“저기 까마귀님.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떤 일이 있으시길래 그렇게 바삐 날아가려고 하셨나요?”
“유명한 일인데 너는 갓 태어나서 모르나 보구나. 이번에 가정과 풍요의 여신이신 프리그 여신님이 아드님이신 빛의 신 발두르님을 위하여 모든 사물에게 ‘발두르님을 해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받고 다니고 계셔. 나는 프리그님이 오시기 전에 모든 사물을 둘러보며 여신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이렇게 날아다니고 있지.”
“우와!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시네요. 그렇다면 저도 프리그 여신님을 뵐 수 있을까요?”

까마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가에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 아마 너같이 작고 보잘것없어도 프리그 여신님께서 맹세를 받아 가실지도 모르지.”
“정말이요? 저에겐 크나큰 영광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까마귀는 그의 날개를 활짝 펴더니 푸른 하늘을 날아 먼 산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다시 찾아온 눈보라 속에서도 매서운 추위 속에도 프리그 여신님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살아가게 하였고, 강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까마귀가 떠나간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프리그 여신님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아마 모든 만물에 맹세를 받으시느라 바쁘신 걸 거야. 기다리다 보면 여신님께서도 나에게 맹세를 받으러 오시겠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나갔을까 하늘에서 찬란한 광휘를 흩뿌리며 프리그 여신님이 내가 있는 산을 방문하셨다. 프리그 여신님과의 대화를 기대하는 내 마음은 부풀어만 갔다. 기사들이 귀부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듯 나 또한 그렇게 맹세하리라 작고 보잘것없는 나지만 그 맹세만큼은 내 생명을 걸고 지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프리그 여신님은 산에 있는 커다란 바위, 눈보라,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 옆에 있는 나무들에도 발두르 신을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으셨다. 그리곤 힐끔 나를 쳐다보시더니 이내 다시 다른 곳으로 신속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프리그 여신님께서는 우선 다른 사물들에게 맹세를 받으시려 잠깐 어디 가신 걸 거야. 맹세를 받으시고 금방 돌아오시겠지.’

나는 다시 한 번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가졌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프리그 여신은 돌아오지 않으셨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여신님의 행방에 대하여 내 옆의 나무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나무님 혹시 프리그 여신님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아! 프리그 여신님은 모든 만물의 맹세를 받고 지금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신 거로 아는데? 맞다. 너 그러고 보니 프리그 여신님께 맹세를 못 받았지?”

나무는 무언가 한심하다는 듯이 그 몸을 세차게 흔들더니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나무의 이야기를 들은 동물들은 나를 보더니 입에 한껏 비웃음을 지으며 나를 지나쳐갔고, 세차게 불던 바람도 휭휭 나를 비웃으며 지나쳐갔다. 그 외의 사물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하였으나 나에게는 왠지 하나같이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야. 프리그 여신님이 잠깐 착오가 있으신 거야 금방 다시 돌아오실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친 나는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에서 나 홀로 있었다. 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보니 갑자기 새하얀 공간에서 칠흑같이 검은 까마귀가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시 돌아오실 거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알고 있잖아. 너같이 어리고 약하고 하찮은 존재에겐 맹세 따위 받을 필요조차 없다는걸.’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그 어떤 생물도 살기 힘든 이곳의 추운 겨울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왔어. 이런 내가 하찮다니 그렇지 않아.’
‘끈질기게 버텨왔다고? 한낱 기생식물인 네가? 너는 스스로 살아갈 힘도 부족해서 참나무에게 기생해서 사는 자그마한 존재일 뿐이잖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아니야.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인정해!』

소스라치게 놀라며 꿈에서 깨어나 좌우를 둘러보니 검은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건  앙상한 나뭇가지와 함께 남은 현실뿐….

맹세가 나만 빗겨갔다는 슬픔과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 날 덮쳤다.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푸른색을 발하던 나의 잎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조금씩, 조금씩 시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저 멀리서 검은 먹구름이 차츰차츰 내가 있던 하늘을 뒤덮더니 기쁜 환성과 함께 불길한 불을 내뿜으면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이든 불태울 것 같으면서도 하지만 매료될 것 같은 붉은 불길을 내뿜으며 불덩이는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금방 아름다운 미남자의 모습으로 화하였다.

“네가 미스틸테인인가? 나는 불의 신. 로키다.”

신이 나에게 말을 건네준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놀랐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로키 신을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위대한 불의 신이신 로키시여. 그런데 무슨 볼일로 저같이 하찮은 나뭇가지를 찾아오셨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네가 필요하다.”
네가 필요하다. 네가 필요하다. 그 어떠한 단어도 내 마음을 그렇게 울릴 수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나같이 하찮은 존재를 왜 필요로 하시는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저같이 이런 춥고 외딴곳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하찮은 존재가 왜 필요하신가요?”
“하찮은 존재라니!”

로키 신은 화를 내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야. 네가 나를 따라온다면 미스틸테인. 앞으로 너의 이름은 영원히 기록되어 이 세상에 남을 것이다. 너를 그 어떤 나뭇가지보다 유명하게 해주마. 내 손을 잡아라.”

“비록 부족한 몸이나마 로키님을 따르겠습니다.”
  
내가 인간이었으면 울음을 터뜨렸을 것 같은 벅찬 감동을 간직한 채 나는 그렇게 로키 신께 외쳤다. 로키님은 내 말을 듣고 이내 나를 참나무에서 꺾더니 껍질을 벗기시고 칼로 나를 다듬으셨다. 그리고는 나를 손에 꼭 쥔 채 빠른 속도로 길을 떠나셨다.

  로키님의 손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푸르면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녹색 빛으로 물든 산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이 그 생명을 밝게, 밝게 발하고 있었고, 따사로운 햇살과 은은히 풍기는 싱그러운 냄새가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 이제 내가 쓸모 있는 것이 되었다는 고양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드넓고 아름다운 신들의 평원 이다평원이 눈에 들어왔다. 평원 한쪽에는 인간이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뽐내고 있는 아름다운 신전들이 자리 잡았는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과 신성함으로 나를 숨 막히게 하였다. 영롱한 빛으로 빛나는 한 신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여러 신이 옆에 있는 사물을 한 신을 과녁 삼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로키님 저건 어떤 건가요?”
“저건 신들이 운명을 피한다고 하면서 하는 웃긴 장난이지. 뭐 그냥 놀이라고 보면 될 거다.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로키님은 신들의 놀이장소 근처에 가만히 내려서더니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과녁이 된 신을 쳐다보셨다. 그러다 나를 세게 움켜쥐시더니 무언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셨다.

“자 이제 사냥이다.” 
“사…냥…이요?”
“그래. 이 세상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냥이지.”

 신전 좌우를 둘러보니 놀이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눈먼 한 신이 있었다. 로키님은 그 신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아무도 모르게 그의 뒤편으로 가 그 신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봐! 회두르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너도 같이 가서 놀이에 참여해야지.”
“어? 로키 당신이군요. 보시다시피 저는 눈이 안 보이니 놀이에 참여할 수 없지요.”
“무슨 소리야. 너도 오딘신의 아들로서 당연히 놀이에 참여할 자격이 있어!”
“하지만 제겐 던질 물건도 없고, 어디다 던져야 하는지 보이지도 않는데요.”
“어허, 내가 자네가 던질만한 물건을 가져왔네. 그리고 위치는 내가 가르쳐주지.”

회두르 신에게 말을 거는 로키신의 눈동자는 주황빛과 초록빛이 이글거리면서 불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불길함에 로키신에게 말을 건네려던 찰나 로키신은 나를 회두르 신에게 넘겨주고 그를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신의 방향으로 인도하였다. 그러자 회두르신은 있는 힘껏 아름다운 신에게 나를 던졌다. 

『쉬이이이이잉』

나는 회두르 신의 손을 벗어나 빠른 속도로 환한 빛을 향해 날아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에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빛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왠지 내 주변의 시간이 점점 느리게 가게 느껴졌다.  

‘뭐가 잘못된 것 같은데? 대체 뭐지?’

빛에 점점 가까워지자 내 뇌리 속에 발두르 신과 프리그 신 그리고 맹세가 떠올랐다. 

‘안 돼! 안 돼! 그만 멈춰줘.’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이미 내 몸은 내 통제에서 벗어났고 결국 나는 발두르 신을 꿰뚫었다. 빛의 신 발두르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빛을 갈구하던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던 나는 그 빛에 타버릴 한낱 부나방에 지나지 않았다.’

글라드스헤임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침묵만이 그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신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빛나는 모습으로 누워있는 발두르신을 멍하니 쳐다보았으며, 아무것도 못 보는 회두르신만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좌우를 둘러보고 있었다. 

‘해냈다. 해냈어!’

로키신은 아무 말도 없이 죽은 발두르신을 보고 있었지만 나에겐 왠지 그러한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회두르 신과 로키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신들의 눈빛은 이윽고 수라와 같은 매서운  눈빛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로키 신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듯 조용히 뒷걸음질 치더니 빠른 속도로 글라드스헤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땅바닥에 버려진 채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졌다. 얼마 지나지 않자 모든 신들이 울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곡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하늘의 빛은 가면 갈수록 사그라졌고, 프리그 여신은 그 상황을 믿지 못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내 아들 발두르를 위해 지옥의 여신의 헬에게서 누군가 지옥의 여신인 헬에게서 제 아들을 데리고 와주세요. 제발.”

흐느끼는 프리그 여신을 보며 다른 신들은 나설듯 멈칫멈칫했지만 이내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러자 한 용맹한 신이 그들 사이에서 나서 힘차게 외쳤다.

“오딘의 아들인 헤르모드! 형제를 위해 기꺼이 지옥에 다녀오겠습니다.”
“헤르모드 부탁한다.”

헤르모드 신은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 나갔고, 남은 신들은 발두르 신의 시체 옆을 지키며 그들의 걱정, 후회, 회한, 슬픔, 분노 등을 표출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을 바라진 않았다. 발두르 신을 모든 만물이 사랑하는 빛의 신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나 같은 하찮은 물건이 어떻게 신을 죽일 수가 있겠어? 어떻게!’

나는 괴롭디. 괴로워하며 바닥에서 덩그러니 하루하루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헤르모드 신이 돌아왔지만 끝내 신들은 발두르 신을 구하지 못했다. 슬픔에 비통한 가슴을 치며 신들은 발두르신의 시신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로키신이 조용한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로키 신이시여, 제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유명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너는 발두르를 죽인 신살의 나뭇가지가 되었지. 너는 매우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으며 유명한 존재가 되었다. 미스틸테인 앞으로 너의 이름은 입에서 입을 거쳐 글에서 글을 거쳐 영원히 기록되겠지 신을 죽인 무기로.”
“저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해하고 슬픔을 주면서까지 명성을 바라진 않았습니다.”
“너는 유명해지길 바랐고, 그리하여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너의 소원을 이루어주었지. 그 방법이 무엇인지 네가 물어보았느냐?”
“아닙니다. 이건 아닙니다.”
“참…. 시끄럽군.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 세상에 대가없는 것이 있더냐! 이제 우리의 계약은 종료다.”

그 말을 마친 뒤 로키신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글라스드헤임을 떠났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지나가던 바람에게 발두르신과 그의 아내 난나여신의 최후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고, 또 시간이 지나 로키신의 신들에 대한 악담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로키 신은 신들에게 잡혀 그 아들의 창자에 묶여 뱀의 독액을 얼굴에 받는 형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인간세계에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형제들이 살육을 저지르며 여인들은 남편을 버리고 아들을 유혹하는 음울한 시대가 도래하였다. 늑대 스콜과 하티는 각각 태양과 달을 잡아먹어버렸고, 하늘의 빛은 사라져버렸다. 대지가 흔들리고 산이 무너지며 예언된 세상의 종언 라그나로크가 시작되어버렸다. 로키와 자식들 그리고 거인들에 맞서서 신들은 물러서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으나 신들이 만들어낸 세계는 그들의 전투에 의하여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내 소망이 세계를 찢는 이 현실을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죽어가는 세계에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지워지진 않는 죄가 나를 짓눌렀고, 나는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용서를 빌었다. 라그나로크가 벌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놓여있던 대지도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고 앞으로 닥쳐올 죽음을 조용히 기다렸다. 차라리 부서져 없어져 버렸으면 했다. 하지만 내 몸은 모든 것이 파괴된 이 시점에서도 죽지 않고 바다 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죄책감이란 바닷물에 내 숨이 막히는 듯 했고, 고통이라는 쇠사슬이 나를 묶는 듯 했다.

‘차라리 부서지면 좋았을 것을…. 하찮은 존재로 만족하며 살 것을….’

내 몸은 이리저리 파도에 부딪혀갔다. 그리고 계속하여 제자리를 맴돌았다. 시간은 흘러 흘러 종말이 휩쓸고 간 세상 위에 커다란 대지가 솟아올랐으며, 하늘엔 태양과 달의 자식들이 눈이 멀 듯한 빛을 수놓았다. 대지는 다시 푸른 생명들로 가득 찼고, 라그나로크에서 살아남은 인간들과 신들은 세상을 다시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밝은 빛을 향하여 그곳으로 헤엄쳐가려 했으나 세상이 나를 거부하는 듯 파도는 자꾸만 나를 밀어내었고,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다시, 다시, 한번만 나에게 기회가 생긴다면 내 자신의 유명세 따위는 바라지 않고, 세계의 적을 무찌르고 약자를 보호하리라.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보호하다가 스러져 없어지고 그 누구 하나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지키리라. 그것이 나의 사명.’

부서지지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나를 벌하는 시간이 대체 언제 끝날 것인지…. 시간의 흐름의 정도는 어느새 잊혀진지 오래…. 수많은 기억들은 풍화되어 사라져가고 오직 사명이라는 글자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때 내 몸이 어느 해안가에 닿았다.

“이것이 우리가 찾던 미스틸테인…….”
나를 주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을 끝으로 나는 길고 길었던 벌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에 정신을 놓았다.

- 연구일지 #296 -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어떤 형태의 자극을 줘도 반응하지 않던 샘플 B가,
갑자기 눈을 뜨고, 직립해서 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샘플 B가 눈을 뜨자마자,
유창한 독일어로 하나의 단어를 발음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명>이라는 단어였다.



––––––––––––––––––––––––––––––––––––––––––––––––––––
필자의 말 : 마지막 연구일지는 2015년 2월 5일부터 11일까지 매일 하나씩 공개된 ‘미스틸테인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chapter 1 각성편입니다.

미스틸테인이 사명에 대하여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북유럽 신화를 보면서 미스틸테인(작은 겨우살이 나뭇가지)의 기분은 어땠을까?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운명에 휘말려버린 가냘픈 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냥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미스틸테인의 설정도 중간에 로키와의 대화에서 집어넣어 보았고요.

약간 진지하게 분위기가 전개되었지만 미스틸의 성별이 애매모호하게 보이는 것도 성별이 애초에 나무(?) 미스틸이기 때문입니다. ㅎㅎ

미스틸테인의 성별은 미스틸이다!

맨 처음 북유럽 신화 관련 이야기 할 때 많이 지루하셨을 텐데 여기까지 스크롤을 내려주신 독자분들게 감사드리고, 설마 그냥 보다가 쭉 내리신건 아니시겠죠? 감사드립니다. 

하얀늑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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